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나이가 벌써 칠십이라!
“인생 일장춘몽(一場春夢)”이라고 누가 말했나. 한바탕 봄꿈 꾼 것처럼 삶이 그렇게도 덧없이 빨리 지나갔단 말인가. 하지만 요즘은 ‘인생 백세시대’라 하는데 칠십 나이는 옛날에 비하면 아직 중·장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.
칠십 고개를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잠시 뒤 돌아본다.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논두렁, 밭두렁을 놀이터 삼아 철없이 뛰놀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성인이 돼 마누라 잘 만난 덕(?)에 살림을 늘려가며 가세(家勢)를 일으켰다.
사랑하는 두 아들 신우, 민우는 이제 모두 착한 며느리 이조은, 송다겸과 각각 짝을 맺어 우리 가족의 보물 손자 시훈, 시완까지 우리 부부에게 선물했다. 고희(古稀)를 앞둔 나이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싶다. 적어도 이 정도면 잘 살아온 삶이 아닐지 생각해본다.
세상을 살면서 늘 좋은 일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좋은 일이 생겨 즐겁다가도 어느 날은 슬픈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. 낮과 밤이 거듭되는 인생살이에서 그래도 환한 낮이 좀 더 많아지길 기원해 본다.
“나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,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”이라고 누가 말했듯이 인생 칠십 고개에 서서 이 세상 유일한 나 자신을 잠시 뒤돌아보며 걸어온 길을 몇 자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.
다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어, 글로 쓰자면 대하소설 몇 권 분량이야 라고, 말하는 사람들도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을 보았다.
‘기록은 영원하지만, 기억은 한계가 있다’라며 인생역정을 글로 남겨보라고 권유한 절친 강석식과 이 글을 쓰게 되기까지 편집 기획과 내용 손질, 교열 등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주신 왕성상 대기자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.
2025년 2월 7일 대전 둔산동 집에서
강호근(姜鎬根)
-경남 진주시 문산읍에서 출생(1956년)
-문산초등학교 졸업(1969년 2월)
-진주중학교 졸업(1972년 2월)
-진주고등학교 졸업(1976년 2월)
-동국대학교 경제학과 졸업(1987년 2월)
-배재대학교 법무대학원 졸업(2004년 2월)
-경제기획원, 사무관(1982~1997년)
-특허청, 부이사관 퇴직(1997~2012년)
-한국특허전략개발원, 본부장 퇴직(2012~2015년)
-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역임(2013년~)
-특허법인 신태양 변리사 근무(2015년~)
-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표창장(1989년 12월)
-국무총리 표창장(1993년 2월)
-특허청장 표창장(1998년 12월)
-녹조근정훈장(2012년 12월)